내가 학교에 다닐 라떼는 아무리 큰 학내사태가 나도 수업은 거부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번은 종합관 4층 대강당에서 채플 후에 수업을 거부하는 찬반투표가 있었다. 어떤 학생은 수업을 거부해야 한다. 이미 학내사태를 한번 경험했던 선배는 절대 수업만큼은 멈춰져서는 안된다며 수업거부를 반대했다. 나는 당시 1학년이었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등록금 냈는데 지들이 무슨 권한으로 수업을 한다 만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튼 결론은 수업거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끝이 났고 아무일이 없는 것 처럼 일상은 다시 흘러갔다.
돌아보면 만약 수업을 거부하기로 했다 하더라도 나는 교수에게 몰래 접촉을 해서라도 수업도 듣고 과제도 낼 계획이었다. 학생회의 낭만, 정의, 신학함의 자세 어쩌구 해도 그 선배의 말처럼 학생의 생명은 수업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페친중에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절대 학생이 교수를 이길 수 없고 어차피 그래봐야 손해는 학생에게 고스란히 돌아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어쩌면 그때부터 학교는 그저 간판이었을 뿐임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그랬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어떤 학내사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조한 출산률과 기독교의 부정적 이미지 마저도 초월하는 감신대 만의 고유한 컨텐츠로 간판을 달러 옮이 아닌 진정한 신학배움을 위해 존재하는 감신대가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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