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편은 어린시절과 더불어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라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정말 왜 나는 기독교인인가에 대한 물음의 질문에 답해보기로 하자. 이런 식으로 대학교, 교회 등등 이야기를 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기에 그냥 내 대답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참고로 나는 신학자도 아니고 그저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한명의 목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기에 내 대답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나의 답변은 인생의 여정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음을 알린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까? 아니 나는 왜 지금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목사라는 직업을 갖고 살아가고있을까?
잠시 질문을 떠나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페북에서 몇 과격하신 페친들이 성경에 대해 하시는 말씀들이 새롭지는 않다. 그리고 사실 신학교에서 다 듣던 이야기였다. 처음 기숙사에서 선배들에게 들어서 충격을 받았던 창세기의 창조설 이야기라던가, 편집되었다는 이야기라던가, 성경이 문학작품이라던가, 기독교가 바울파와 베드로파의 정치 완력으로 찢어질 뻔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합의를 봐서 만들어진 책이 사도행전이라던가의 등등의 썰들은 이상하게도 나에게 아무런 신앙의 의구심을 갖지 못하게 했고, 솔직히 지금도 그렇다. 다시 말해, 성경이 사실이냐 아니냐, 성경의 기적이 사실이냐 아니냐, 노아의 홍수가 전지구적인가 아닌가, 창조론인가 아닌가는 별로 관심도 없고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밝히는데 시간을 투자하기도 싫다. 다만, ‘아~ 그렇게도 생각이 가능하네, 그럴 수도 있겠다. 공부할게 참 많다.’라는 생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교회와 교단에 부패, 정치권력에 붙어먹는 목사들, 세습, 성추문, 횡령, 등의 이야기들도 지난 번에 나눈대로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고 그 생채기로 인해 목회를 그만두려고도 했었지만 이런 것들 역시 나에게 신앙을 포기할만큼의 큰 사건은 아니었다.
솔직히 내 생각에 이런 신앙에 의구심을 만들고 성경이 진실이네 사실이네라는 물음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를 나는 교회의 부패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인간의 이성 어쩌구 저쩌구는 다 핑계일 뿐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들의 글에는 예수에게 외치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예수여, 당신이 세운 교회는 저렇게 썩었고,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기는 커녕 세상의 짐이 되었으며, 목사들은 반쯤 미친 사이비 교주가 되었소, 그 이유가 바로 당신의 가르침 때문인 것 같소, 혹시 그대는 이미 존재하지도 않은 가공의 인물은 아니요? 야훼여 말좀 해보소, 코로나도 못고치는게 신이오?”라는 물음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선택했나?
첫째로 내가 뿌리 내린 공동체가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선택했다.
이민자들에게 잠언과 같은 말씀이 하나 있다.
“너를 처음 공항에 마중나온 사람이 네 이민인생을 결정한다.”
명언 중에 명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첨언하자면 이민자가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이민교회가 이민자의 인생을 결정한다. 내가 만나고 이야기하고 이야기 듣고 삶을 보고 같이 삶을 사는 사람들의 영향력을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공동체가 읽는 성경과 그들의 삶이 일치하지 않을 때, 목사의 리더십이 성문제와 돈문제로 무너질 때, 두 그룹이 머리터지게 서로 싸울 때, 불법으로 국가보조금 땡겨서 건축할 때, 성경에 의문을 품고 야훼에 의문을 품는 2세대들이 나오는 것을 굉장히 많이 봐왔다.
물론 성경에 의문을 품고 기독교인이 되지 않기로 선택한 이들도 있다.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는 처음에 며느리인 우리 어머니의 전도로 성경책을 처음 읽으시다가 유다와 다말 이야기에서 성경책을 집어 던지시며 “에이 이 책 더럽다!”라고 말하며 교회를 안나가셨다. 하지만 소속된 가족공동체가 기독교공동체였기에 마지막 순간에는 결국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시고 찬송가를 부르는 가운데 자기 아들의 품안에서 돌아가셨다.
나 역시 누군가가 성경을 하나씩 다 따져들어가고 그 의문에 대해 어떻게 이것을 믿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물음에 답에 나도 모른다고 대답하거나 그동안 배워왔던 기독교 변증가들의 대답을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것외에 다른 답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나에게는 내가 뿌리내린 교회라는 공동체를 떠날만한 이유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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