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나는 기도많이 하던 선배 혹은 후배라고 알려져 있었다. 신학교 시절, 그래도 열심히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고 지하철전도도 했다. 주님의 사랑에 불타서 했다기보다는 대형교회의 목사님들은 그렇게 신학교 시절을 보냈다고 해서 그렇게 다 따라해보았다. 나는 대형교회 담임이 되서 세계방방곳곳에 복음을 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데뷔무대의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 한번은 충만히 기도를 하고 교문밖에 나와 금와초등학교 방향의 골목길을 선배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는데, 술에 취한 노숙자가 감신대 교문 앞 길가에 앉아있었다.
선배들이 나에게 말했다.
“너 요즘 기도도 많이 하고 성령충만하니까 한번 이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줘라”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될 기회였다. 언젠간 그럴듯한 간증을 큰 강대상에서 해야할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마도 기도를 하면 술기운이 쭈욱 빠져나가면서 이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이 사람에게 손을 대고 강력하게 기도를 시전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더러운 술귀신은 떠나갈찌어다"
술독이 빠져나와 예수님을 영접해야 할 이 사람은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사람살려요, 이상한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요”
뭔가 잘못된 것을 직감한 나는 형들에게 말했다.
"형 뛰어요 도망가야 할것 같아요"
그때 나는 ‘능력이 나타나려면 아직 멀었구나 더 기도해야하겠구나’ 다짐을 하며 아직은 여의도 목사님처럼 연세교 목사님처럼 되려면 멀었다는 나 자신의 내공없음을 못내 아쉬워하며 좀더 기도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귀신이 아니었다. 그냥 일상에 찌들어 의지할 곳 없어 술에 취한 불쌍한 한 사람이었다. 왜 나는 그때 불쌍한 한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 이름을 드높여줄 기적의 능력의 도구로만 그 사람을 바라보려고 했을까?
사람은 깨닫는 때가 있다. 그 때가 조금 늦을 수도 있고 빠를 수도 있다. 만약 내가 그 사람을 지금 만난다면 따뜻한 국밥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그의 삶이라도 한번 들어보며 그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고자 노력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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