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지만 군생활 포함 6년의 인천의 추억은 내 기억속에 영원하리…
감리교 신학은 자유주의신학이라 하지만 신학만 자유일뿐 현장에 가면 참으로 기상천외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그 자유가 혹시나 다른 의미로서의 자유라면 할말은 없지만 말이다.
어머니의 영적 아버지가 소개해준 인천의 한 교회, 어쩌면 나나 그 교회나 서로 만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뻔 했는지도 모른다. 매주일 다른 어떤 신학생은 맨 뒤에 앉아 어떤 청년부 자매와 사랑한다며 손잡고 뽀뽀할 때 나는 맨 앞 왼쪽 세번째줄, 어떤 권사님옆에 앉아 담임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그 어떤 말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 뽑아다 심은 소나무가 하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아멘!” “신학생들은 나는 갈길모르니 주여 인도하소서 하고 울면서 새벽에 기도해야되~” “아멘”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아멘!”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아멘아멘아멘” (묵찌빠 묵찌빠 - 그곳출신이면 다 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참 많다. 어머니의 영적 아버지께서 가면 자기 후배목사가 재워주고 먹여준다는 말을 듣고 군대 갈때까지 돈한푼안내고 매주 토요일 일요일 그 집에서 밥도 먹고 빨래도 내놓고 그 집 아들인양 살았다. 돌아보면 나도 별로 잘한게 없다. 사모님이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간다.
차라리 솔직하게 불러서, “너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 밥은 왜이리 많이 먹냐, 돈이라도 내고 있으면 덜 열받겠다, 너 오지 마라”라고 정확하게 이야기 해줬다면 정신 차리고 그 먼 인천까지 왔다갔다 하지는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차라리 잘 사용하는 예언기술로, “하나님이 가라사대 인천을 떠나 더 크고 넓은 믿음의 장소로 갈찌어다”라고 말했다면 자연스럽게 떠났을텐데.
시간이 되어 군대를 갔다. 내가 간다니 너무 좋으셨나보다. 집에 갈 때 내 모든 물건을 다 챙겨서 짐을 미리 다 싸놓으셨다. 제대를 했다. 그때 정신차리고 다른 교회로 사역을 나갔어야 했는데 또 그곳으로 기어들어갔다. 이번에는 담임목사님 댁이 아닌 권사님 댁에서 지냈다. 안가도 되는 특별 새벽기도회, 교사 기도회, 모든 기도회란 기도회는 다 참석하고 이렇게하면 그 교회 전도사가 될 줄 알고 그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했다.
때는 학부 4학년, 타이밍을 잘 맞춰서 같은 동기들 중에 가장 빠르게 대학원에 진학할 타이밍. 그러나 이미 그 교회 토박이들과 장로아들 목사아들이 있는 가운데 내가 들어갈 TO는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달았어야 했는데 순진한 마음에 그 교회 전도사 한번 되보겠다고 목사님께 케익도 사다드리고, 안하던 사랑의 문자도 보냈다.
하지만 대형교회 목사들은 대부분 밑에 데리고 있는 사역자가 안하던 짓을 하면 그것을 순수한 동기로 받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석하기에 ‘이 놈이 야망이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교회를 끝까지 다닌 동기는 사실 전도사나 부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 교회에 임한 특별한 예언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 예언을 담임목사님은 주일 설교에 인용하셨고, 나는 그 예언을 한톳씨도 안빼뜨리고 기도수첩에 빼곡하게 적었다.
간단하게 그 예언 요약하자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성령의 불이 이 교회에 내려올텐데 이 교회를 중심으로 거룩한 운동이 일어나고, 그 불받은 사역자들은 세계만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며 부흥의 불쏘시개가 될 것이며, 이 불이 내려올 때 거룩한으로 준비되지 않은 자는 죽기도 할 것이다. 그로인해 모든 방송국들이 취재를 오기도 할 것이다”라는 내용의 예언이었다.
“여러분 거짓말하면 천국갈까요 지옥갈까요? 부담금 제대로 내야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거짓말하는 감독들 천국갈까요 지옥갈까요?” - 이때부터 감독혐오증이 시작된 것 같다. 이때 설교시간에 돈 주면 자기 감독시켜준다고 정치장로들이 찾아왔다면서 이런 멋진 일급비밀을 성도들에게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그 교회 엄청나게 교단 세금을 낸다.
도올 김용옥 선생에 대해서도 예언하면서, 예언하는 어떤 사람이 그러는데 “그는 교만해서 지금은 떠들지만 갑자기 사라질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 갑자기는 20년이 가까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일어나지 않는다. 점진적 계시인가?
2002년 월드컵 예언 간증도 기막히다. 하나님이 이탈리아를 2:1로 이긴다고 예언하셨는데 그게 맞아 떨어졌다. 그때 스포츠토토 했다면 대박났을텐데…
“하나님이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계속 건축해라, 성도들 돈 있다.” - 건축이 활발히 진행될 때
아무튼 이 불을 받기 위해 그 교회에 뼈를 묻는다는 각오로 내 대학 4년의 시절을 보냈는데, 새로 지어진 교회건물 앞에서 담임목사님 최후통보를 하신다.
“너는 야망이 너무 커, 작은 교회로 가서 부흥을 일으키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다시는 여기 오지마라”
“목사님, 저를 쫓아내지 마세요, 아직도 더 많이 배워야 해요”
“6년동안 많이 배웠잖아? 그걸로 충분해”
“저는 이 교회에 떨어질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해요. 저를 내치지 마세요.”
“그 성령의 불은 어디서나 다 받을 수 있는 거니까 그런 걱정하지말고 가라”
지금 돌아보면 그분이 고맙다. 사실 그분은 나에게 본인의 영업비밀, 예언장사의 비밀을 나에게만 알려주신 것이니…
그리고 그분이 나에게 해주신 개인적인 영업비밀의 말씀대로 그 예언이 말한 성령의 불은 아직도 그 교회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 불 떨어질 때 그 자리에 있어야만 받을 수 있다는데 난 뉴질랜드에 있으니 어떻하나, 아! 코로나라 온라인으로 받으면 되겠구나!
누구나 자신을 믿음의 주인공 이삭으로 생각하며 성경을 읽지 이스마엘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쫓겨나면서 나 자신이 이삭인줄 알았는데 이스마엘이였음에 서러워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래도 이스마엘은 가죽부대에 물이라도 담아 줬는데 나는 도리어 열심히 내 시간과 헌금과 젊음을 바치고 쫓겨났으니 말이다.
마지막 날 주일 저녁예배를 드리고 부평을 빠져나오는데 정말 그곳 뒤도 안돌아보고 나왔다. 떠나는 당일 누군가 나에게 충고한다.
“너 떠나갈 때 그 어떤 변명도 목사님이 너에게 하신 그 어떤 말씀도 아무에게도 누구에게도 하지 말고 그냥 떠나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교인들이 연락와도 절대 받지 말아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처럼 침묵하며 떠나라”
몇 년 후, 새로운 교회에 면접날 목사님이 묻는다.
“이력서에 6년간 사역기록이 하나도 없고 비어있는데 왜 그런가?”
“앞으로 15년뒤 페이스북에서 말씀드릴게요”
*사진출처 | 감리교교육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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