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신대의 추억

영성일기

감신 2022. 1. 8. 13:05
문학과 글쓰기 고진하 목사님의 수업이었다. 기숙사 형들이 술을 마시고 담배도 피는 모습에 신입생인 나는 어안이 벙벙했고, 모두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공식적으로 입밖으로 내는 이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수업 때마다 일기를 쓰고 앞에 나가서 발표해야 하는 시간, 어떤 친구는 사랑고백을, 어떤 친구는 예수님의 사랑을, 어떤 친구는 신학적 방황과 고뇌를, 그리고 또 어떤 친구는 술 한 잔을 했더니 모든 편견이 사라졌다는 일기를 발표했고 같은 교실에 있던 우리는 웃기도 하고 심각해지기도 하고 박수와 환호도 보내기도 했다.

 

사실 나도 그때 어떤 일기를 쓸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감없는 그림일기로 반 친구한테 얻어맞은 이력이 있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나름 조심했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페북에 글을 쓰는 나를 보면서도 더욱 느낀다. 그래, 사람은 그 모습 그대로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사는게 가장 행복한거다.

 

연애를 하고 싶으니 나랑 사귀어주라, 기도의 사람이 되고 싶다, 성경을 읽고 싶다 등등 어떤 이야기를 쓸지 고민하면서 기숙사 방에서 나름 고심하고 있는데 갑자기 처음 뵌 술에 취한 선배님이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소리를 지르신다.

 

“야 임마! 너 몇 학번이야?!”
“네? 저…”
“선배를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아, 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것 안배웠어? 몇 호 몇 학번 아무개입니다라고 해야지!”

 

얼굴은 벌겋고 혀는 꼬였고 다리도 풀린 가운데 선배님은 일장연설을 하시다가 자기 방으로 돌아가셨다.

 

이런 일을 겪은 후에 나는 방금 일어난 이 일을 영성일기에 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문학과 글쓰기 시간에 나는 앞으로 나가 이 일을 발표했고, 아마도 술 먹은 그 선배를 때려주고 싶다는 내용의 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의 분위기, 당황한 목사님의 얼굴 그리고 깔깔 웃어대던 강의실의 분위기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유명인사가 되었고 조용히 학교를 다니고 싶었던 나의 소망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 일기를 가만히 가지고 있었다면 유물로 남았을텐데 안타깝게도 일기를 찢어버려서 지금은 기억속에만 남아 있다.

 

술먹은 사람 술먹었다고 학교 안에서 말했을 뿐이데 왜 그게 그렇게 큰 이슈가 되었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 아무튼 그 이후 내 방에 계속 모르는 선배들이 찾아와 나를 구경하고 돌아갔다.

 

“네가 영성일기 읽은 애냐?”

 

어떤 선배는 좋게 타이르기도 하고, 어떤 선배는 나의 일기장으로 내 머리를 툭툭치며 혼내기도 했다. 그 선배님이 페북친구로 뜨길래 얼른 친구신청을 했지만 받지 않으신다. 나름 그 여정에 함께 해주셨음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추억을 공유해보고자 하는데 별로 그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신가보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별로 영성일기를 즐겨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