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신 2023. 1. 10. 22:29



*6년 전에 쓴 글. 어떤 선배가 다른 선배에게 복사해서 이 글을 메시지로 보냈다. 아마도 싸움구경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짓을 한 놈이 페북친구요 감신선배라니 참 쪽팔리다. 아무튼, 그 놈에게 그 메시지를 받은 선배가 바로 나에게 연락을 했다. 글 내리라고.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글을 내렸다. 하지만 추억은 읽혀질 때 추억이 되는 법.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그 놈이 이 글 복사해서 또 보내서 연락오면 이제 이렇게 대답해야겠다.

“형님 저도 이제 소주 한 잔은 합니다. 물론, 형님 말씀하셨듯 술 취하게는 안마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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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뉴질랜드는 서서히 봄이 오고 있다. 봄이 와서 그런지 옛 생각들이 많이 떠오른다. 그냥 그런 옛 추억들을 페북에 한번 끄적여 본다.

간단히 내 소개를 하자면 99년도 감신대에 신입생으로 입학한 나는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리고 머리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 친구의 말처럼 신학적인 머리는 타고나야 하는 듯 한데, 나는 신학적인 머리보다는 그저 목적없이 열심히 해서 장학금 한번 타고 싶었던 학생이었다. 나의 동아리는 WRMC였고, 학점을 1점 더 받기 위해 합창단에 들어갔다. 학교에 들어가기전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 신학교수의 말은 듣지 말아야 한다. 기도열심히 해라, 성경열심히 봐라. 만약 데모하자고 하면 너는 슬쩍 빠져나와라라는 이야기가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런 주워 들은 이야기속에서 나는 선입관을 갖고 감신대에 입학했다. 내 이야기는 다음에 더 하는 것으로 하고 기숙사에 대해 이야기보자.

보통 지방에 사는 학생들은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감신대 기숙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던 나는 그저 신학생들 중에는 '술과 담배'를 하는 사람도 있다더라 라는 이야기 외에는 실제로 어떤 곳이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입학식날 지방에서 올라오기가 쉽지 않아 학교에서 배려를 해주어 입학식 전날에 기숙사에서 잠을 잘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방에 배치되는지 모르게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세 선배님들과 방을 한학기 동안 쓰게 되었다. 짐을 옮기는 날 기숙사 냉장고를 열어봤더니 소주가 한병 들어있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 술이 들어있어서 살짝 충격을 받았다. 그때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것을 보시고, "아니 기숙사에 소주가 한병있네요"라고 하니 기숙사 선배중에 한 분이, "더 한 시련이 있을텐데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요"라고 웃으게 소리를 한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뭐 어여튼, 입학식 전날 나의 방 선배님들은 막내가 들어왔다고 탕수육과 더불어 만찬을 준비하셨다. 방은 이층침대가 두개가 놓여져 있었고, 4인이 한방을 쓸 수 있었다. 그때 나의 방 넘버3 선배님께서 "혜원아 너 어디 침대를 쓸래?"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정말 순수했다.) "형이 나이가 많으시니까 2층을 쓰세요 제가 1층을 쓰겠습니다."라고 나름 신경을 써서 말씀을 드렸는데, 뭔가 분위기가 안좋았었다. 몇일이 지난 후에 보통 막내가 2층을 쓰고 선배가 1층을 쓴다는 사실을 알고나서야, 나는 침대를 바꿨다. 그 이후로 나는 계속 2층 침대를 써야 했다. 군대에서도 2층, 뉴질랜드에서도 2층 다행히 지금은 2층 침대의 손아귀에서 해방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하나 더 에피소드가 있다. 기숙사에서 방원들은 선배부터 시작해서 후배까지 돈을 걷어서 생활용품을 구입하여, 한학기 동안 사용한다. 샴푸나 세제, 비누등을 말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게 똘망똘망한 타입의 후배는 아니었다. 나에게 심부름을 부탁한 선배가, 알아서 세제도 사고 샴푸도 사오라고 했는데, 절대로 챠밍샴푸는 강아지를 씻기는 샴푸니 절대로 챠밍샴푸 큰 것은 사오지 말라고 부탁했다. 4만원 정도 가까이 되는 돈으로 기억한다. 세제와 샴푸를 사는데 선배의 부탁을 순간 다 잃어버렸다. 세제도 2만원 가까이 되는 큰 놈으로 하나 구입하고, 샴푸도 제일 큰 챠밍샴푸를 구입했다.(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순수한 마음으로 큰 것을 사면 오래쓴다는 마음에 일단 이름도 확인하지 않고 세제도 샴푸도 큰 것을 구입했다.) 선배형님은 그 샴푸를 1년 동안 쓰셨고, 나를 볼때마다 너가 챠밍샴푸 사와서 내가 이거 다쓰고 있다고 말했다. 내 위의 어떤 선배는 과자를 사오라고 했는데 2만원어치 엄마손 파이를 다 사와서 전설로 남았었는데, 그래도 나는 그 선배보다는 내가 그래도 좀 더 낫지않나 생각해본다.

기숙사의 식단은 정말 훌륭했다. 학생들이 운영을 해서 그랬는지, 지금 이윤을 남겨야 하는 외부업체의 현 기숙사의 배급식 식단에 비하면 정말 그때의 기숙사 식단의 메뉴가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훌륭했다. 기숙사 식당 아줌마들도 가족같았고, 친절했다. 아직도 기숙사 식당에서 식사할 때, "어머니 반찬좀 더주세요"라고 누군가 말하면 반찬을 더 주었던 그 기억이 생생하다. 사랑이 넘치는 따스한 식당분위기라할까...

기숙사의 전체 분위기는 "군대"같았다. 군대를 제대한 예비역들이 기숙사를 운영하니 당연히 그런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예를들면, 다른 방을 들어갈 때는 이렇게 인사해야한다. "안녕하십니까 204호 99학번 신학과 김혜원입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렇게 인사하고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양치질을 하면서 밖에 돌아다니면 혼났다.

학생이 운영을 하다보니, 모든게 자율이다. 새벽기도도 철야기도도 성경도 밤새도록 읽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컴퓨터를 밤새도록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이 말은 즉은 다른 행위들도 밤새도록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니 알 사람은 알고 모를 사람은 모르게 그렇게 언급한번 하기로 한다. 새벽기도의 시간이 되면, 기숙사 신앙부장은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신앙부장에게 이어져 내려오는 새벽종을 땡그렁 땡그렁 울리며 "새벽기도 갑시다"라고 위층에서부터 아랫층까지 새벽잠을 깨운다. 한번은 어떤 열정이 넘치는 WRMC선배중 한분이 종을 땡그렁 땡그렁 하고 은은하게 울려야 하는데, 쾌종처럼 띠리리리리링 울렸다가 어떤 선배에게 혼났던 일이 있었다. 안간다는데 왜 깨우냐라는 그런 뜻에서 후배를 혼내지 않았을까 예상해본다.

강제가 없는 새벽기도는 은혜가 충만했다. 사람은 없지만 그 기도의 깊이 침묵기도 테잎이 돌아가면서 기도했던 그 기도의 향은 구수한 커피의 향처럼 아직도 내 마음을 잔잔히 울려온다. 누구도 성경봐라 기도해라 하지 않았던 기숙사, 때로는 성령의 술에 취해 문열어 하고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나면 딱딱따따따따다닥 하고 각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나는 기숙사 그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