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주의 상자 밖으로
그대는 충분하다
감신
2022. 1. 7. 06:15
처음 목사안수를 받았을 때 이제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동안 했던 세상적(?)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목사가 되었으니 희생해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목회를 하면 더 행복하고 사역에 은혜가 넘쳐야 할텐데 이상하게 마음은 더 불안하고 사역은 더 힘들고 부부관계는 더 안좋아졌다.
나는 그 사람을 도와야 하고,
나는 그 사람을 변화시켜야 하고,
나는 그 사람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것만큼 교만한 생각도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다 만났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다 심방하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다 연락했는데
사람이 변하지 않고
도리어 나 자신만 더 지쳐가고 힘들어졌다.
알고보니 나는 어쩌면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불가능한 일을
목회라는 이름으로
가능케 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나는 목사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다.
다시말해 내가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이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가족이어야 했다.
그 후에 내가 섬기는 교회의 교인들이어야 했다.
그 중에서도 나와 함께 같은 비전을 품고 갈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이어야 했다. 모든 이를 내가 바꿀 수 없고 모든 이를 행복하게 만들 수도 없다. 그리고 나 하나도 바꾸기 쉽지 않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내가 돕지 않는다 하여
한 사람이 망하는 것도 아니요
내가 돌본다고 하여
한 사람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아니더라도
그 사람의 삶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일하고 있고
나 역시 그 손길의 작은 하나의 조각일 뿐이었다.
이제 비로소 No라고 말하는 법을
조금이나마 배운 것 같다.
아닌 것은 아니기에
더 이상 Yes라고 말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려하지 않는다.
나의 한계가 분명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하나님이 하시는 부분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다.
그저 내 삶의 자리에서 그 은혜에 감사하여
그 은혜에 감사하고자 믿음으로 이웃을 향해
내딛는 작은 사랑의 손길 그리고 한마디여도
목사의 부르심을 이루는데는 충분할 수 있다.
너무 성인이 되려고 하지 말고
너무 예수님의 삶을 똑같이 베끼려 하지말자.
하나님이 만드신 나 다움으로
그저 나에게 맡겨진 하루를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하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있는 모습 그대로의
그대는 충분하다.